학위 수집가는 사절
“ 하버드에서 이미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데 왜 MBA를 지원했죠?” 면접관이 안경 너머로 의아해 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한국의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정부 장학금으로 하버드 케네디스쿨 과정의 졸업을 눈앞에 두고 있으면서 서른을 넘긴 나이에 또 MBA 과정에 진학하겠다니 이상하게 보는 것이 당연했다. 나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외환위기 당시 정부에서 기업 구조조정 업무를 담당하면서 제 자신이 경영 현실을 너무 모른다는 자책이 들었습니다. MBA 과정을 통해 기업 현실에 대해 공부하고 경험을 쌓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학교보다는 기업에 들어가는 것이 보다 효율적인 방법 아닐까요?”
미국 인들은 가방 끈 긴 것을 좋게 보지 않는다. 학자가 될 게 아니라면 현장에서 빨리 일을 배워 성과를 쌓아야 그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는다. 그런 미국인의 시각에서 회사에 다니면서 시간을 내어 학위를 취득하려고 하는 한국인들이 학위 수집가처럼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면접관의 눈초리에는 ‘바로 당신이 학위 수집가 아니냐’ 하는 의문이 묻어 있었다. 취조 받는 것처럼 긴장된 시간이 흐른 뒤 면접관이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작년에 한국 대기업을 방문했는데 세계적인 기업의 경영자들이 기본적인 영어도 못하더군요.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과거에는 그랬지만 앞으로는 아닙니다. 저 역시 외환위기가 없었다면 굳이 미국에서 MBA를 하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계기로 글로벌 경제를 배우기 위해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미국 MBA 과정으로 유학을 오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외환위기는 한국에게 숨겨진 축복입니다.” 답변이 끝나자 면접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고, 결국 그 미소는 내게 하버드 비즈니스스쿨(HBS)에 들어가는 문을 열어주었다.
300자 안에 당신의 인생이
HBS 에 입학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중 인터뷰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에세이다. 수많은 경쟁자들 가운데 개인의 독특한 스토리를 드러내는 것은 흰 도화지 위에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 입학 사정관이 큰 비중을 두며 읽는다는 사실 때문에 에세이 작성 과정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각 주제에 대한 분량이 300자로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나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려야 한다는 압박감에 정신없이 써놓고 보면 500자, 1000자를 훌쩍 넘기기 일쑤인데, 그렇게 쓴 것을 줄이고 또 줄일 때마다 제 살을 깎아내는 아픔을 느낀다. 힘들게 줄이고 난 후에도 핵심이 전달된 것 같지 않으면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체득하는 것은 치열한 비즈니스 현장에서 자신의 메시지를 짧고 간결하게 전달하는 훈련이다. 세계 최고의 인재가 모이는 컨설팅 회사 맥킨지에는 30초 룰이라는 것이 있다. 고객 회사의 CEO를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나 출입구까지 내려가는 30초 동안 설득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는 것. 사실 비즈니스 관계로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면, 미국인들은 서두에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 상대의 주의를 환기시킨 다음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서술하는 어법을 많이 구사한다. 중국의 고사성어에 촌철살인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 비즈니스스쿨 입학에도 이렇게 단 300자가 중요한 것을 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말의 간결성을 강조하는 것은 비슷한 것 같다.
세계를 변화시킬 리더를 꿈꾼다
하 버드 비즈니스스쿨(HBS)은 ‘세계를 변화시킬 리더 양성’을 목표로 한다. HBS는 비즈니스스쿨이지만 비즈니스계에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를 변화시킬 리더를 양성하는 리더십 학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HBS 입학 에세이를 쓸 때는 자신이 이제까지 학교와 직장에서 어떻게 리더십을 키워왔으며, 미래에는 어떤 목표를 갖고 사회에 도움이 될 리더가 될 것인지를 보여줘야 한다.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입학생의 면면을 보면 학력과 경력 면에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다양하다. 실리콘밸리의 젊은 창업가,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가와 컨설턴트, 종합병원 외과의사, 촉망받던 발레리나, 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 AIDS 계몽활동을 폈던 인권운동가, 각기 다른 영역에서 온 이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장래 자기 분야에서 리더가 될 수 있는 가능성과 자질을 증명했다는 사실이다.
미래의 리더들을 모아 교육을 시키다 보니 현재 전 세계적으로 6만 5천 명의 HBS 동문들이 글로벌 기업, 정부, 국제기구, 비영리단체, 사회사업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HBS 출신의 세계적 CEO로는 GE의 제프리 이멜트, GM의 릭 왜고너, 전 IBM의 CEO 루 거스너, 이베이의 맥 휘트먼 등이 있으며, 정계에서 활약하는 동문으로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MBA 출신 대통령 조지 부시, 재무장관 헨리 폴슨, 뉴욕시장 마이클 블룸버그, 멕시코 대통령 비센테 폭스 등이 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 스티븐 코비, 1989년 천안문 사태의 학생 리더 차이 링, 전 NASA 우주인인 윌리엄 앤더슨 등은 독특한 길을 걸은 동문이다.
품질은 우리가 책임집니다
HBS 의 최고에 대한 집착은 교과과정의 설계 및 일반 회사들의 리쿠르팅에 대한 학교 방침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HBS의 교과과정은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HBS는 현대 경영학 교육에서 많이 사용되는 케이스 교습법의 발상지로 학생들은 졸업할 때까지 수백 개의 기업 사례를 분석해야 한다. 기업현장의 실제 상황들이 제시되고 학생들은 CEO의 입장에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를 난상토론한다. 평가의 절반이 수업 시간의 발표와 토론으로 결정되므로 학생들은 서로 발표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과목당 10%의 학생들은 낙제점수를 받으며, 한 학기에 두 개 이상의 과목에서 낙제를 받으면 학사경고, 다음 학기에도 개선되지 않으면 학교를 떠나야 한다.
학사관리가 철저한 만큼 HBS는 학생들을 고용하려는 기업에게 성적표 제출을 요구하지 못하도록 공식 방침을 정해놓았다. “학생들의 품질은 우리가 철저히 관리하므로 성적을 요구하지 마시오. 꼴찌도 품질을 보증합니다.” 어찌 보면 오만으로 보이지만 이런 배경에는 성적을 공개하면 학생들 간의 학점 경쟁으로 인해 리더를 양성하고자 하는 MBA 프로그램 본래의 취지가 흐려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실제로 이 규정을 어기고 학점을 요구한 몇몇 기업들이 학생들의 신고로 발각되었고, 다시는 리쿠르팅 목적으로 HBS 캠퍼스에 발을 붙일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수십 년을 내려왔던 학점 비공개 원칙도 최근 학교 방침의 변화로 사라지게 되었다. 치열한 찬반 논쟁 끝에 폐지 쪽으로 결론이 난 것이다. 과연 이런 변화가 수업 분위기나 학생들 간의 팀워크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그 결과가 주목된다.
HBS의 저승사자
“Hit the screen!” 이 말은 낙제 위기에 처했다는 뜻으로 HBS가 운영하는 독특한 낙제 시스템이다. 최소기준에 못 미치는 학생은 낙제를 시켜서라도 졸업생의 평균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HBS의 학점제도는 1,2,3제로 학점을 매긴다. 1은 상위 15~20%, 2는 중간 70%, 3은 하위 10~15%의 강제분포로 평가한다. 중간 그룹에 대한 관리는 느슨한 반면 하위 그룹에 대한 평가는 혹독하다.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수업에서의 발표인데 전체의 50%를 차지한다. 따라서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교수의 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공중에 솟구친 50~60명의 손들을 보면 기가 질린다.
과도성취형 스타일인 HBS 클래스에서 확률상 3을 받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2학기 연속 3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바로 Hit the screen 하게 되고 학사성과위원회의 낙제 심사에 들어가게 된다. 1학년이 끝나면 슬그머니 사라지는 학생들이 있다. “회사에 사정이 생겨 돌아갔다.” “가정 문제로 본국에 돌아갔다.” 등의 소문이 들리지만 과연 그런 사정 때문인지, Hit the screen 한 것인지는 본인만이 알 수 있다. 이런 1학년 학생들의 노이로제를 반영해 기말고사를 앞두고 학교신문(Harbus)에 다음과 같은 기고문이 실린 적이 있다.
“어제 교수에게서 90명의 학생 중 5명 이상이 hit the screen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은행은 매월 험악한 이자 청구서를 보내지, 커리어서비스는 내게 10억 년이 지나도 좋은 직장을 구하기 힘들 것이라고 하지.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다시 돌아가라고. 교수의 말은 매일 밤 엄마에게 전화해서 왜 나를 낳았냐고 불평하거나 아니면 머리로 기숙사 벽을 박아 금이 갈 정도로 크게 동기부여를 했다.”
공포의 콜드콜
HBS MBA 과정에서 전설처럼 내려온 콜드콜의 전통은 케이스 수업의 불가결한 요소이다. 콜드콜이란 원래 물건을 팔기 위해 예고 없이 전화(또는 방문)를 하는 것을 말하지만 HBS에서는 수업을 시작하면서 교수가 예고 없이 학생을 지목해 질문하는 것을 말한다. 졸업생의 기억을 되살려 보면 콜드콜은 전 세계에서 몰려온 똑똑한 학생들이 90여 명의 동기생 앞에서 진땀을 흘리거나 아니면 반짝반짝 빛나게 되는 경험이다. 하루에 각각 다른 수업에서 두 번의 콜드콜을 받는 불운아, 일 년 동안 콜드콜의 포탄을 용케도 잘 피한 행운아 등 차이는 있지만 HBS에서 수업을 받는 동안 적어도 한 번은 콜드콜은 당한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과연 언제 그날이 올 것인가 하는 것이다.
HBS 학생이면 누구나 전날 밤 다른 일이 있어서 혹은 피곤해서 케이스 준비를 끝내지 못하고 깜빡 잠들었다가 아침에 눈을 떠 비명을 지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허겁지겁 학교로 뛰어가면서 오늘만은 제발 콜드콜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만약 콜드콜을 당한 학생이 대답을 제대로 못할 경우 강의실에는 순식간에 싸 하고 정적이 흐른다. 냉랭한 분위기가 수업이 끝날 때까지 계속됨은 물론이다. 이렇게 수십 년을 거쳐 내려오는 동안 콜드콜 때문에 울고 울었던 선배들의 경험은 학생들 간에 콜드콜 경험칙이라는 이름으로 공공연히 전수되어 내려온다.
<<콜드콜 경험칙: 콜드콜의 확률이 높은 학생>>
- 케이스를 다루는 산업분야에서 일한 적이 있거나 일하기를 희망하는 학생
- 지난 두세 번의 수업 동안 한 번도 발표를 한 적이 없는 학생
- 전날 수업에 지각한 경우 → 다음날 콜드콜, 오늘 수업에 지각한 경우 → 몇 분 후 콜드콜
- 전날 수업에서 바보 같은 대답으로 교수 심기를 불편하게 했거나 전날 밤 꿈을 잘못 꾼 경우
HBS 에서 미국학생들이 발표하는 것을 듣고 있노라면 정말 별것 아닌 것을 별것인 것처럼 유창하게 말하는 능력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비즈니스계의 지존을 꿈꾸며 HBS로 몰려든 그들인데 오죽하겠는가? 정말 이 친구들은 물에 빠져도 입만 동동 뜰 정도로 말을 잘한다. 필자의 경우에도 타고난 한계는 어쩔 수 없지만 2년 동안 쉴 새 없이 말하는 훈련을 하다 보면 발표 능력이 놀랍게 향상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아무리 말이 안 되는 내용이라도 숫자와 비즈니스 용어를 써가며 고객의 넋을 빼놓을 정도면 MBA를 마치고 하산할 경지에 이른 것이다. HBS 출신이 주로 썰을 푸는 데 강하다는 데서 나온 하버드 헛소리 스쿨(Harvard Bullshit School) 학파는 아마도 이런 과정을 거쳐 양성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러브 스토리 in 하버드
선 남선녀들이 한 섹션의 일원으로 하루하루 열정적으로 생활하다 보면 자연스레 사랑과 우정 사이의 묘한 감정이 흐른다. HBS에서는 이를 ‘섹션 러브’ 또는 ‘섹션 로맨스’라고 부른다. 섹션 친구들은 70%가 미혼이다. 이들은 수업, 스터디 그룹, 클럽 및 각종 과외 활동, 파티, 무도회 등 하루에 거의 12시간 이상을 같이 보내기 때문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HBS에서는 적어도 첫 1학기 동안은 섹션 러브에 빠지지 말라는 불문율이 있다. 힘든 MBA 생활에 적응하며 동시에 연애에 빠지는 것은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1학기가 지나는 동안 나눠 마신 알코올의 누적량이 늘어나고 무도회에서 망가진 모습을 몇 번 보고 나면 여기저기서 로맨스의 연기가 피어난다. “누구누구가 서로를 보는 눈빛이 보통이 아니다.” “둘이 자주 만나는 것 같다.” 등의 소문도 돈다. 큐피드의 화살은 인종과 국적을 불문하고 학생들의 가슴에 꽂혀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들끼리 섹션 러브가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행운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90명 중 성사되는 비율은 매우 낮은 편인데 많은 학생들이 섹션 친구들이 친동생이나 친오빠 같아서 그다지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힘든 수업에 시달리면서 세수도 못하고 머리가 쩍 달라붙은 채 하품을 하는 모습을 다반사로 보기 때문이다. 설사 공식 커플이 탄생하더라도 졸업을 하고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거나 직장 때문에 서로 다른 지역으로 흩어지게 되면 학창시절의 열정은 대부분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남는다.
HBS 판 아카데미 시상식
금 요일은 케이스와 콜드콜에 시달리는 한 주를 마감하는 즐거운 날이다. 금요일이 즐거운 이유는 또 있다. HBS 판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매주 금요일 수업이 끝난 후 열리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학생들이 자율로 치르는 행사지만 수십 년을 거쳐 내려오는 동안 HBS의 필수 불가결한 관행으로 굳어져 있다. 이 시상식에는 HBS 학생들의 기상천외한 창의력, 재치와 유머가 집대성되는데 그중 몇 가지 특징적인 상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상어상(the shark award): 한 학생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굶주린 상어처럼 달려들어 무차별하게 공격한 학생에게 수여 ② 다이하드상(the die-hard award): 주위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자신의 의견을 끝까지 내세운 학생에게 수여 ③ 1학점 아부상(trying to get ONE award): A 학점을 받기 위해 교수한테 아부하는 발언을 한 학생에게 수여 ④ 그 교수를 공격하라 상(the assault the professor award): 수업이 끝날 때마다 교단으로 다이빙해서 교수를 둘러싸고 추가 질문을 함으로써 눈도장을 받으려는 학생에게 수여 ⑤ 후입선출상(the LIFO award): 수업에 늦게 들어오고 끝나자마자 제일 먼저 뛰쳐나간 학생에게 수여 ⑥ 바람둥이상(the playboy award): 수업 중에 다음 발언을 한 남학생에게 수여 “저는 이 문제를 어젯밤 미셸과 의논했고 오늘 아침 낸시와도 토론했는데…….”
학생은 왕이다
1 학년 2학기 수업이 한창 진행될 무렵 나는 서울에서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마음은 당장 서울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일주일 이상 학교를 떠나 있어야 하는데 그 공백을 만회할 수 있을까 걱정이었다. 지도교수를 만나 사정을 설명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가족보다 소중한 것이 어디 있나? 학교에서 모든 사정을 고려해서 돌아온 뒤에도 어려움이 없도록 조치할 걸세.” 나는 그 길로 서울행 비행기를 탔다.
서울에 머문 10여 일 동안 나는 학교 측의 세심한 배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에 도착하니 내가 학교를 떠난 날부터 모든 수업이 나를 위해 녹음될 것이라는 학사담당자의 이메일이 와 있었다. 나중에 학교에 돌아왔을 때 나는 과목명과 날짜가 적힌 녹음테이프를 받을 수 있었다. 또한 학교에서는 서울에서 온라인으로 중간고사를 볼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해주었고, 그중 한 시험은 보스턴과 동시에 진행될 경우 새벽 3시에 시험을 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시험을 연기해주기도 하였다. 마침내 강의실로 돌아온 날, 같은 섹션 학생들은 따뜻한 격려의 박수를 쳐주었고, 내 자리에는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적은 격려와 위안의 메시지 카드가 놓여 있었다.
다양한 국적, 배경, 나이의 학생들이 모여 공부를 하다 보면 개인사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HBS는 오랜 학사 경험을 통해 어려움에 처한 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왔다. 학교 입장에서 학생은 교육 대상자일 뿐 아니라 서비스를 받는 주요 고객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HBS 하면 한 치 오차도 없이 혹독하게 비즈니스 리더를 키우는 사관학교처럼 인식되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학생들 개개인의 사정을 이해하고 그들의 가족을 배려하며 학생들이 공부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최대한 지원하는 따뜻한 얼굴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디어로 돈을 긁어모아라
최 고의 CEO가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 HBS 교수는 대학을 중퇴하는 것이라고 해 학생 모두가 웃은 적이 있다. 굳이 빌 게이츠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비즈니스에 대한 아이디어와 열정이 넘치면 틀에 박힌 대학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가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얘기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어떤가? 옛날 부모님들은 자식들을 놓고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하곤 했다. “첫째는 공부를 잘하니까 ‘사’ 자 들어가는 직업이 좋을 테고, 둘째는 공부가 시원찮으니까 장사나 시키지 뭐.” 여기서 장사를 HBS에서 사용되는 말로 표현하면 바로 비즈니스이다.
자기 회사를 차린다는 것은 마지못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창의력, 조직력, 리더십 등의 복합적인 능력과 노하우가 있어야 성공하는 종합예술이다. 같은 커피를 팔더라도 동네의 허름한 커피숍이 될 수도 있고 전 세계에 커피를 파는 스타벅스가 될 수도 있다. 최근 HBS의 졸업생들은 졸업 후 5년 이내에 약 1/3이 자기 회사의 경영자나 대주주가 되며 10년 이내에 이 숫자가 절반 이상 늘어난다고 한다. MBA 학생들의 기업가 정신을 촉진하기 위해 HBS에서는 벤처기업에 관련한 케이스를 접할 수 있는 VCPE(venture capital private equity)라는 수업을 개설하고 있다. 이 수업에는 케이스의 실제 주인공인 CEO들이 초청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학생들과 비슷한 또래이기 때문에 수업이 끝나면 의기투합해 그 회사에 조인하기도 하고 학생들의 코멘트를 실제 경영에 반영하기도 한다. 학생들로서는 기업가로 겪은 그들의 생생한 성공 및 실패담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된다.
해 마다 HBS 강의실에서는 수십 개의 벤처기업이 탄생한다. 일례로 우리 섹션의 한 여학생은 이미 《포춘》에 그 해의 유망 벤처기업가로 선정되어 유명세를 탔으며, MBA 과정 중에 또다시 바이오 기업을 창업해 TV 인터뷰를 하기도 하였다. 앞으로 한국의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할 때가 오기를 바란다. “첫째는 공부는 잘하는데 고지식하니 ‘사’ 자 들어가는 직업을 구하면 좋겠고, 둘째는 머리가 좋고 뭔가 큰일을 해낼 것 같으니 사업을 해보라고 권해야겠다.”
지옥에서의 한 주
HBS 에서의 구직활동은 2월 초에 정점을 이룬다. 10월부터 시작된 기업 설명회와 인턴십 지원 마감이 끝나면 기업들은 수많은 이력서 중에서 인터뷰할 학생을 선정한다. HBS는 2월 초 일주일을 리크루팅 주간으로 정하고 기업들이 학교에 와서 학생들을 인터뷰하도록 한다. 이 기간 동안 수십 번의 인터뷰를 해야 하는 학생들은 이를 “지옥에서의 한 주(hell week)”라고 부른다. MBA 학생들이 선호하는 컨설팅펌과 투자은행의 경우 최종 결정까지 보통 서너 차례 인터뷰가 진행되는데 컨설팅펌은 “보스턴에 주유소가 몇 개 있는가?” “디트로이트에서는 고양이가 매일 몇 마리나 태어나는가?” 등의 황당한 질문을 던진다. 정답 없는 질문을 던져 즉석에서 어떤 논리적 추론을 통해 해답을 찾아 나가는지를 보는 것이다. 투자은행은 기업의 재무 상태를 보는 법이나 기업의 가치평가 등에 대한 질문을 하지만 갑자기 “오늘 다우존스지수가 얼마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학생들에 따라서는 일주일 동안 적어도 3~5개, 많게는 10~20개의 회사와 인터뷰가 잡혀 있어 옴짝달싹 못하고 이 호텔 저 호텔로 뛰어다니며 인터뷰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니 지옥에서의 한 주가 끝나면 각종 에피소드가 속출한다. 한 학생이 인터뷰 시간에 늦어 급하게 호텔에 도착했다고 한다. 뛰어오느라 목이 말랐던 그는 자판기에서 콜라를 하나 뽑아 들고 면접장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힘찬 목소리로 인사를 했지만 면접관의 표정이 떨떠름했다. 영문을 모른 채 자리에 앉아 목을 축이는 순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코카콜라 회사의 인터뷰에 펩시콜라를 갖고 들어간 것이다. 하루에 여러 개의 회사를 인터뷰하다 보면 정보가 뒤섞이기도 한다. 한 학생은 인터뷰에서 왜 이 회사를 지원했느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떠벌렸다. “제가 이 회사의 샌프란시스코 지사에서 일한다면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이에 면접관은 이렇게 대답했다. “흥미롭군. 우리 회사는 샌프란시스코에 지사가 없는데 말일세.” 어떤 친구는 A은행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악수를 하면서 “감사합니다. 저는 정말로 B은행에서 일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B와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던 A은행의 면접관은 “B은행에 내 친구가 몇 명 있는데 소개해주지”라고 일침을 놓았다고 한다.
지옥을 거친 주말에는 HBS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드러난다. 어떤 친구는 두 군데서 오퍼를 받았느니 세 군데서 오퍼를 받았느니 말들이 많다. 그때가 되면 지옥의 한 주에서 빠져나온 것이 아니라 새로운 주간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된다. 하지만 주말에 커리어서비스가 전 학생에게 보내는 다음의 메시지는 꺼져가는 불빛을 다시 한 번 지피는 계기가 된다. “이번 주에 인턴십 오퍼를 받은 학생은 전체의 1/3에 불과합니다. 학생들은 실망하지 말고 더욱 열심히 구직활동에 힘써주기 바랍니다.”
파티 우등생들
HBS에는 상상을 초월한 파티 문화가 존재한다. 이로 인해 타교 학생들로부터 부르주아라는 핀잔을 듣기도 하지만 미래 글로벌 CEO 지망생으로서 습득해야 할 비즈니스 문화의 하나로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외국인 학생에게는 미국의 상류 비즈니스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체험의 장이기도 하다. 주말마다 다양한 주제로 파티가 열리는데 하이라이트는 수십 년간 HBS의 전통으로 내려오면서 독특한 문화로 자리 잡은 무도회이다. 이는 단순한 파티보다 격식을 갖춘 것으로 남자는 턱시도, 여자는 이브닝드레스를 입는 것이 최소조건이다. HBS에서 열리는 몇 가지 대표적인 무도회를 소개한다.
약탈자의 무도회(predator's ball): HBS의 첫 번째 공식 블랙타이 파티.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초가을에 파이낸스 클럽이 주최한다. 약탈자의 무도회는 1980년대 월스트리트를 풍미했던 마이클 밀켄과 관련이 있는데 그는 새로운 금융기법을 통해 적대적 M&A를 하는 기업 사냥꾼으로 악명을 떨쳤다. 1980년대 드렉셀 증권사는 채권전문가를 초청해 세미나와 함께 무도회를 열었는데 초청되는 사람들이 기업 사냥꾼들이었기 때문에 ‘약탈자의 무도회’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HBS 판 약탈자의 무도회는 호화로움이 오리지널에 비할 바 못 되지만 제2의 밀켄을 꿈꾸는 월스트리트 지망생에게는 필수적인 파티라 하겠다.
할 로윈 무도회(holloween ball): 할로윈 복장을 하고 벌이는 파티다. 베스트 드레서로 뽑히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마귀할멈, 프랑켄슈타인부터 배트맨, 슈퍼맨 등 장난기 가득 찬 옷차림을 보면서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 재미있는 것은 정치지도자도 ‘공포의 대상’으로서 할로윈 복장의 모티브가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복장이 등장하기도 했는데 아시아 출신 학생의 경우 악명 높은 김정일의 곱슬머리, 검은 뿔테안경, 배 나온 인민복 복장으로 등장하면 크게 히트를 칠 것이다.
하 버드 무도회(harvard ball): 가을볕이 완연할 때 가장 고급스러운 파티인 하버드 무도회가 열린다. 마치 중세 유럽의 격조 높은 파티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유럽 클럽이 스폰서를 하며, 유럽 댄스 공연, 오페라, 남성 아카펠라 그룹의 화려한 공연이 이어진다. 학생들은 할로윈 무도회 등에서 우스꽝스러운 복장만 보다가 처음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보고 색다른 느낌을 갖는다.
프리실라(priscilla ball): HBS에서 가장 엽기적인 파티. 프리실라가 열리는 날은 턱시도를 입은 사람보다 드레스를 입은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유는 남학생들이 여장을 하고 나타나기 때문이다. 남학생들은 그날을 위해 패션 잡지를 보고 최신 유행을 파악한 후 아울렛을 돌아다니며 가장 섹시한 의상을 고른다. 파티 당일에는 가발, 립스틱, 초미니 스커트, 인공가슴 등을 동원해 최대한 섹시한 여성으로 부활한다. 프리실라는 남성들에게 잠재한 여성화 욕구를 마음껏 분출하게 해서인지 남녀 모두 배꼽을 잡고 웃으며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훌훌 날려버리는 최고의 인기 파티다.
SHOW SHOW SHOW
한 학년이 끝나갈 즈음 HBS에서는 한 편의 뮤지컬이 캠퍼스의 무대에 올려진다. HBS의 가장 큰 축제이자 전통의 하나인 HBS 쇼다. 모든 부담에서 해방된 기분에 학생들 대부분이 이 쇼를 관람하는데 3~4일 동안 공연은 매회 만석을 이루며 축제 분위기에서 진행된다. 20~30달러짜리 티켓을 사 들고 들어간 관객들은 쇼가 펼쳐지는 두 시간 동안 여러 번 놀라게 된다. 먼저 뉴욕의 브로드웨이 쇼를 그대로 옮겨온 것 같은 수준에 놀란다. 배우들의 농염한 연기와 탄탄한 드라마, 박진감 넘치는 댄스와 노래, 번뜩이는 재치와 유머는 두 시간 내내 관객들의 눈과 귀를 붙들어 놓는다.
쇼는 매해 내용과 구성이 바뀌지만 변하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 전형적인 HBS 스타일에 대한 과장된 풍자다. HBS 쇼에는 항상 등장하는 단골 주인공이 있다. 돈밖에 모르는 학장, 학생 앞에서는 근엄하지만 학장 앞에서는 죽는 시늉까지 하는 부학장, 수업마다 발표에 목숨 거는 범생이, 월스트리트에서 일확천금을 노리며 과장된 이력서를 뿌리는 예비 사기꾼, HBS에 온 목표가 백만장자 남편을 만나는 것인 공주병 여학생, HBS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여자를 유혹하는 플레이보이가 그들이다. 이 쇼의 모든 요소는 HBS 학생들에 의해 만들어지는데 60명 이상의 학생이 동원되며 꼬박 10개월이 소요된다. 다행히 1, 2학년 합쳐 1천 8백 명에 이르는 인재의 풀 덕분에 가수, 배우, 연주자, 극작가로서 수준급 재능을 가진 학생을 뽑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HBS 쇼 제작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학창생활의 많은 부분을 희생하지만 그들은 그럴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쇼에 출연한 날부터 그들은 각자 섹션에서 단연 스타급 대우를 받기 때문이다. 또 준비 과정에서 쌓은 끈끈한 우정은 평생을 갈 정도로 강렬하다. 열광적인 분위기 속에서 HBS 쇼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면 모두는 전쟁같이 치열했던 한 학년을 접고 각자가 계획한 여름을 찾아 뿔뿔이 흩어진다.
월스트리트에서의 인터뷰
MBA 필수 과정 중 하나인 서머인터십은 실제 기업에서 일을 해봄으로써 비즈니스 감각을 높일 수 있는 기회로 나는 이에 적극 참여하기로 했다. 나의 구직 활동은 투자은행에 집중되었다. MBA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가장 국제적이면서도 비즈니스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투자은행의 인터뷰는 강도 높고 집중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3차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지원자들의 수를 점차 좁혀나가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방식이다. 나는 지옥에서의 한 주 동안 진행된 미국계 투자회사와의 1차, 2차 면접에서 간신히 살아남았다. 남은 관문은 3차 면접. 보통 투자은행의 3차 면접은 1, 2차 면접을 통과한 미국 전역의 MBA 지원자들이 월가의 본사에 모여 진행된다.
인터뷰는 세 팀의 면접관들과 진행되었다. 두 팀은 뉴욕 본사의 임원들이었고 다른 한 팀은 홍콩 지사에서 온 임원들이었다. 다른 회사와 인터뷰하면서 경험했던 전형적인 질문과 모범 답안들이 이어졌다. 학생 입장에서 인터뷰는 간단하게 해야 좋은데 시간이 넉넉하다 보니 마치 취조를 받는 듯했다. 1시간이 어떻게 지나고 있는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끝없이 지껄여댔다. 위기는 마지막 인터뷰에서 왔다. 홍콩에서 온 깐깐한 임원이 익숙하지 않는 금융 관련 질문을 마구 쏟아낸 것이다. 위태롭게 금융지식에 대한 테스트를 넘기자 마지막 질문이 던져졌다. “투자은행에서 일한다면 애널리스트들을 지도하면서 일해야 하는데 그들은 당신보다 3~4년 더 지식과 경험을 쌓은 전문가들입니다. 당신보다 100배는 더 많이 아는 자존심 강한 친구들을 어떻게 이끌 생각입니까?”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이렇게 말했다. “어느 조직이나 리더십 포지션으로 올라갈수록 중요한 것은 큰 그림을 보는 눈이라고 생각합니다. 애널리스트들은 세부적인 디테일에는 강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정부, 컨설팅펌에서 일했던 경험과 MBA에서 다양한 산업과 일반경영을 공부한 덕분에 금융, 기업, 산업, 정부 정책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넓은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금융지식은 현장에서 근무하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공항으로 돌아가는 내 심정은 참담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마지막 질문이 내게는 다음처럼 들렸다. “국제금융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당신이 어떻게 이곳에서 일하겠다는 거요. 꿈을 깨시오, 꿈을!”
그 길로 학교 기숙사에 도착하니 밤 9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뉴욕까지 가서 보란 듯이 떨어지고 온 나 자신을 위로하는 기분으로 맥주 캔 하나를 땄다. 그 순간 휴대전화가 울렸다. 나를 진땀 나게 했던 홍콩지사의 임원이었다.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당신의 열의와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뜻밖에 합격이었다. 국제금융계의 중심에 있는 세계적인 투자은행에 입성하다니! MBA에서 말로만 들었던 투자은행을 내부자로서 직접 경험한다는 것은 내게 또 한 번의 흥미로운 도전을 의미했다.
가장 역설적인 졸업연설
HBS 의 졸업식은 성대한 축제다. 졸업식 행사는 하루지만 일주일 전부터 각종 파티, 리셉션, 단과대학별 졸업기념 행사 등으로 서서히 분위기가 고조된다. 졸업하는 학생들의 최대 관심사는 졸업 축하연설을 누가 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 연설은 동문이나 유명 인사들이 하기 때문에 학교 측에서는 당일 그 순간까지 철저하게 비밀에 부친다. 또 다른 관심사는 졸업생을 대표해서 졸업연설을 할 학생을 뽑는 일이다. HBS에서는 졸업연설을 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의 지원을 받아 1차 선발한 뒤 모든 학생들 앞에서 콘테스트를 열어 최종 연설자를 선발한다. 2004년 졸업식에서 치열한 경쟁 끝에 선발된 연설자는 HBS의 교육 시스템과 학생들에 대한 풍자를 통해 관객들을 시종 웃기면서도 졸업 후 HBS 학생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졸업생 여러분, 우리가 졸업 후 얼마나 행복해지는가는 HBS에서 배운 교훈을 어떻게 잘 버리느냐에 있습니다.” 2년 동안 HBS의 독특한 교육 시스템과 문화에 세뇌된 대표 학생의 연설 첫 머리 치고는 너무나 엉뚱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500개의 케이스를 배웠습니다. 피아노나 마라톤을 그렇게 연습했다면 대가가 되었을 겁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배웠을까요? 의사소통 능력, 의사결정 능력, 분석적 능력, 혹은 ‘나는 다 안다’ 식의 자만심은 아닌가요?” 이어 그는 HBS가 자랑하는 케이스 수업에 날카로운 칼끝을 겨누었다. “HBS 케이스 매 하단에는 다음과 같은 주의문구가 있습니다. ‘이것은 관리적 상황의 효과적 또는 비효과적 대응을 설명하기보다 학교 수업의 토론용으로 쓰여졌다.’ 매일 케이스를 다루면서 실제로 경영도 해보지도 않고 경영의 효율성 또는 비효율성에 대한 가치 판단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요리학원에 있는 목적이 실제로 요리를 해보고 그 요리가 잘됐는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요리의 상황에 대해 토론하기 위한 것이라며…….”
날카로운 지적이다. 재치 있는 비유에 다들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그의 말에 동의하는 눈치였다. “사교 생활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매주 벌어지는 우스꽝스러운 파티 없이는 정상적으로 친구를 사귀고 사교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HBS 문화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학생들은 낄낄거렸다. 이곳에서는 남성들의 여장 파티, 교통신호 파티 등 파티마다 색다른 주제를 붙이는 것이 유행이다. 학교 밖에서 보면 정말 할 일 없는 이상한 사람들 취급받기 딱 좋다. 어쨌든 그의 연설은 학생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2004년 졸업식의 학생대표 연설로 선정되었고, 특유의 뼈 있는 유머로 전 졸업생과 교수진, 학부모들의 배꼽을 잡게 만들었다.
하버드 VS 서울대
“ 하버드와 서울대 학생 중 누가 더 공부를 잘하냐?”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여기에 대한 내 대답은 “두 대학의 학생들은 좀 다르다”이다. 두 대학에서 바람직한 인재상으로 삼는 학생들을 보면 위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온다. 서울대는 학력고사에서 높은 성적을 받는 학생을 실력 있는 학생으로 추정하고 받아들인다. 하버드의 신입생 선발과정은 다르다. 내신이나 학력고사가 몇 퍼센트라는 특별한 기준이 없는 대신 리더십이나 봉사활동 경험 그리고 학생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종합적으로 녹아 있는 입학 에세이를 중시한다. 한마디로 하버드는 앞으로 사회에서 리더가 될 수 있는 다양한 재능을 가진 학생들을 선호한다.
하 버드에서는 천재 같은 친구들이 자주 눈에 띈다. 수업시간에 발표하는 것을 보면 기지와 총기가 번뜩이는 친구들이 많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 것 같지 않는데도 만점을 받는다. 처음에는 엉뚱해 보여도 문제를 해결하는 독특한 접근법과 독창성,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을 보면 혀를 내두르게 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의 교외 활동이다. 한국 학생들이 학점만 잘 받으면 취업이 잘된다고 공부에만 전념하는 것과 달리 하버드 학생들은 방학 때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인턴을 하거나, 컨설팅펌, 투자은행, 대기업 등의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봉사활동으로 모금 운동을 하는 등 사회로 진출하기 전에 다양한 리더십 경험을 쌓는다.
결국 각 사회가 미래에 어떤 형태의 리더를 양성하려고 하는지에 따라 대학의 기본적인 컨센서스가 달라진다. 각 사회의 기본적인 가치판단에 따라 제도와 인센티브의 틀이 결정되고 개인들은 그러한 시그널에 따라 자기 자신을 형성해가는 것이다. 하버드의 교육 시스템은 전인교육에 가깝다. 이런 교육 시스템에서 사고하고 행동하고 판단하도록 길러진 학생들이 나중에 다양성을 인정하고 타협과 설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리더가 되지 않을까?
인기 최고의 전직 대통령 빌 클린턴
2001 년 11월 19일 열광적인 환호 속에 진행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하버드 강연회는 재임 중의 윤리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의 대중적 인기가 여전함을 확인시켜 주었다. 과거 재무부 장관으로 그를 보좌했던 서머스 총장이 클린턴 대통령을 이렇게 소개했다.
“동료들을 위해 시간을 가장 많이 내주는 친구, 시험이나 리포트 제출 하루 전에도 사람들을 불러 모아 밤을 새며 노는 친구, 그러면서도 시험에서는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 친구,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다른 동료들이 부러워하지 않게 하면서 모든 동료들이 그를 따르게 만드는 친구.”
서머스 총장은 이어 그가 클린턴에게 배운 세 가지를 소개했다. 첫째 성공적 리더십은 사물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깊은 지식에서 비롯된다는 것. 클린턴 대통령은 끊임없는 지적욕구와 학습으로 참모들을 감탄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둘째 위기상황에서 옳은 것을 위해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용기. 멕시코 페소화 급락에 따른 국제 금융위기 당시 백악관에서는 참모들이 멕시코에 250억 달러의 금융지원을 할 것인지에 대한 팽팽한 설전을 벌였다. 돈을 빌려 주었다가 떼일 경우 클린턴의 재선가도에 심각한 악영향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이때 클린턴은 이렇게 말했다. “두 가지만 묻겠습니다. 지원을 하지 않으면 국제금융시장에 재앙이 올 수 있습니까?” “네.” “OK, 지원을 한다면 재앙을 방지할 수 있다고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원을 하지 않는다면 나는 밤에 잠을 자지 못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는 이런 결정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셋째 공직에 대한 열정과 고귀한 사명감. 클린턴 전 대통령은 항상 그와 일했던 참모들에게 공직의 중요성을 설파했다고 한다. 9.11 사태 당시 모든 사람이 세계무역센터의 계단을 다급히 내려오는 순간에도 그 계단을 거꾸로 뛰어 올라간 사람들은 소방공무원들이었다며, 공직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 항상 강조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과거 자신의 참모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등장하자 학생들이 뜨거운 기립박수를 보냈다. “감사합니다. 총장님(영어로는 Mr. President) 사실 서머스 총장님이 나를 Mr. President라고 부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옛날의 그 관계가 그립군요. 하지만 우리 둘 중 하나는 정년퇴직이 없는 직장을 구해서 다행입니다.” 클린턴 특유의 재치 있는 유머로 관중은 강당이 떠나갈 듯이 웃어댔다. 이어진 연설은 미국을 이끌어가고 있는 최고 지도자가 지금의 세계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웠다. 특히 9.11 사태가 발생한 지 불과 2개월밖에 안 되어 전 미국 사회가 그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와중에 미국 정신문화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하버드에서 하는 연설이기에 그 의미는 더욱 각별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정말 타고난 대중 연설가였다. 강당에 들어서기 전에는 그에 대해 다소 비판적이던 학생들도 그의 연설을 들으면서는 환호를 아끼지 않았다. 연설이 끝나고 강당을 나올 때쯤은 어느덧 클린턴의 팬이 되어 있었다. 만일 우리나라에서 재임 중에 그 같은 윤리적 스캔들을 일으켰다면 절대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성의 전당이라는 하버드에서 그토록 열렬히 환영받는 것을 보니 그의 인간적 매력, 대중적 친밀도가 마치 신기한 마법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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